만평(漫評)

무엇을 선택할 것인가-장하준

내일보기 2012. 6. 8. 12:23

박정희 체제=절대악? 어리석은 규정

[한국 경제 성격 논쟁] 정태인·이병천의 비판에 답한다<3>

장하준 케임브리지대 교수,정승일 복지국가소사이어티 연구위원,이종태 <시사IN> 기자

 

- 정태인·이병천의 비판에 답한다
<1> 이건희와 삼성그룹도 구별 못하나
<2> "재벌개혁 만능론은 반민주적 행위"

마오쩌둥의 코미디

박정희와 동시대 인물이었던 중국의 마오쩌둥 주석이 1960년대 초에 가장 갈망했던 것은 산업의 쌀인 강철 생산을 대폭 늘려 10년 안에 영국미국을 따라잡는 것이었다. 그런데 중화'인민공화국'의 지도자였던 마오쩌둥은 외국자본을 도입하고 해외 선진국의 기술과 설비 등을 그 돈으로 구입하여 제철업을 발전시키는 '외자의존형 발전'을 하고 싶지는 않았다.

그래서 '인민에 의지'하기로 했다. 그 방법은 전국의 인민을 제철 원료의 공급자인 동시에 제철 기술자로 만드는 것. 마오쩌둥은 가정과 학교, 직장마다 작은 용광로를 설치하여(일명 '뒷마당 용광로') 인민들로 하여금 자신들의 부엌 솥단지와 문틀, 머리핀, 농기구 등등 쇠로 만들어진 온갖 물품을 던져 녹이게 하였다. 당시 기차를 타고 밤에 마을 주변 들판을 지나노라면 용광로 불꽃에 물든 '혁명적 야경'이 가히 볼 만했다고 한다.

지금으로서는 믿기 힘든 이야기인데, 실제 그렇게 했다. 그렇지만 그런 식으로 조잡하게 제조된 강철이 무슨 쓸모가 있겠는가. 거의 전량이 폐기되었고, 마오쩌둥의 제철산업 육성은 역사의 코미디로 남았다. '외국자본 혐오'의 극단적 사례다.

그런데 마오쩌둥과 반대로 '외국자본 숭배' 때문에 경제발전에 실패한 나라들도 많다. 1960~1970년대 남미 일부 나라의 지도자들은 선진국 외국자본이라면 쌍수를 들고 환영했다. 미국과 유럽 등 선진국에서 온 다국적 기업들에게 자국 기업에 기술을 이전하라거나 자국 경제발전 및 고용에 도움이 되는 사업을 하라는 등, 해외자본이 싫어할 만한 요구(말하자면 자본에 대한 국가적 통제)는 거의 하지 않았다. 심지어 해외 금융자본 유치라는 지상(至上)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서 초고금리 정책이라는 파괴적인 거시경제 정책을 구사한 나머지 토착 산업의 성장이 결정적으로 가로막히기도 했다. 한국이 자본과 기술이 전무한 후발국에서 세계적인 자동차반도체 생산국으로 발돋움하는 동안 남미와 동남아의 대다수 나라들이 선진국 다국적 기업들의 '조립공장'으로 머무를 수밖에 없던 것은 이러한 '외자 숭배' 때문이었다.

정상적 자유주의로 야만적 노동탄압을 넘어서자고?

한국의 개발독재 시기는 대다수 민중에게 참혹한 시대였다. 노동자들은 저임금과 군대식 규율, 경찰폭력과 산업재해의 위험 속에 세계 최장의 괴로운 노동시간을 감내해야 했다. 전태일 열사의 분신으로 상징되듯이 노동자의 개인적 권리와 노동조합은 야만적으로 탄압 당했다. 어떤 분들은 마치 우리가 <무엇을 선택할 것인가>와 <쾌도난마 한국경제>에서 마치 반노동적인 박정희식 독재국가를 한국의 미래로 제시하기라도 한 양 비난한다. 하지만 이는 전혀 사실이 아니다.

박정희의 개발독재 시기인 1960-1970년대에 한국뿐 아니라 대다수 개발도상국의 노동자들도 가혹한 노동착취를 당했다. 그에 반해 당시 미국과 유럽 등 서구 선진국의 노동자들은 높은 임금과 역사상 최고조의 복지를 누리고 있었다. 그렇지만 역사적으로 살펴보면 서구 선진국들 역시 1930년대까지만 해도 야만적인 노동탄압과 국가폭력, 사회 상층부의 부정부패가 일상적이었다. 즉 노동착취와 반민주주의, 부정부패는 자본주의 발전기의 보편적 현상이었으며 박정희 체제로 대표되는 한국 자본주의만 특별히 '비정상적'이거나 '왜곡된' 것이 아니었다. 오죽했으면 마르크스가 "자본은 머리에서 발끝까지 구멍이란 구멍에서 피와 오물을 내뿜으며 태어났다"고 묘사했을까. 자본주의의 이러한 '더럽고 천박한 천민적' 모습은 (동일한 경제발전 수준이라면) 1960-1970년대의 한국과 개발도상국에서보다 오히려 18세기, 19세기 유럽과 미국의 자본주의에서 더 심했다.

박정희와 이디 아민의 차이

▲ 박정희.
그런데 1960-1970년대에 노동착취와 반민주주의, 부정부패 등으로 물들었던 개발도상국들이 모두 2012년 현재의 한국처럼 세계적 품질의 자동차와 반도체, 스마트폰을 제조하고 있지는 않다. 그렇다면 한국은 우간다나 필리핀 등과는 뭔가 다르지 않았을까? 말하자면 박정희가 아무리 극악한 반(反)노동, 반(反)서민적인 폭압적 독재자였다 할지라도, 그에 못지않게 폭압적이었던 이디 아민(우간다)이나 마르코스(필리핀)과는 뭔가 다른 '경제' 정책을 운용했기 때문에 한국의 경제성장이 가능하지 않았을까?

그렇다면 경제정책상의 그 차이점은 무엇이었을까? 우리가 발견한 결정적 차이는 바로 박정희가 '자본에 대한 국가적 통제'를 매우 강하게 구사하였다는 점이다. 그리고 바로 이 부분이 우리가 '박정희 옹호자'니 '박정희주의자'니 하는 모욕적인 호칭을 감수하면서까지 주목하고 싶은 점이다.

박정희식 경제체제 – 반노동, 친성장을 위한 국가적 자본 통제

박정희는 마오쩌둥과 달리 외자를 적극적으로 도입했다. 당시 한국과 개발도상국들은 초보적인 수준의 생산설비와 기술도 갖지 못한 나라들이었기에 해외에서 생산재와 기술을 구입하려면 당연히 외화가 필요했다.

만약 한국 정부가 당시 진보적 정치경제학자인 박현채 선생의 민족경제론에 따라 '민족자본'(민족경제에 자기재생산의 기반을 갖는 자본)만을 경제발전의 밑천으로 삼으려 했다면, 따라서 해외 설비와 기술의 도입에 소극적이었다면, 오늘날의 한국에는 포스코도 현대차삼성전자도 없었을 것이다.

박정희는 남미나 아프리카, 필리핀의 독재자들과 달리 외국자본의 무차별적 자유와 권리를 승인하지 않았다. 예컨대 GM이나 IBM, 또는 도요타와 폭스바겐 같은 선진국 다국적 기업이 한국에 조립공장만 세우고 기술이전도 하지 않으면서 오로지 자사의 국제생산 네트워크에 우리 기업들을 종속시키도록 허용하지도 않았다.

박정희 체제는 당시 선진국 수준에서 보면 어린아이에 불과했던 포항제철현대자동차, 대우조선, 삼성전자 같은 회사들을 초국적기업들로부터 보호하기 위하여 수입을 규제했고, 또한 그 초국적기업들이 한국에 공장을 세울 때에도 여러 가지 방식으로 국가적으로 통제·규제하였다. 당시 한국이 도입한 외자는 대부분 직접투자(기업 설립)나 다수 지분 투자(한국 대기업의 소유권 장악)가 아니라 부채였다. 정부가 외자를 빌린 뒤 당시 국유기업이었던 은행들을 통해 국가경제 발전에 가장 긴요한 전략 부문들에 투자하도록 했다. 만약 당시 외자가 직접투자나 다수 지분 투자로 들어왔다면, 외자가 한국의 경제발전에 유리한 방향으로 움직이도록 '국민경제적 시각에서 통제'하는 것이 원천적으로 불가능했을 것이다.

직접투자나 지분투자로 들어온 외국자본은 마음만 먹으면 제멋대로 철수할 수 있다. 그러나 외자가 부채로 들어오는 경우, 더구나 정부가 그 외자 부채를 통제하는 경우, 그 돈(자본)을 국내 산업 발전과 수출 활성화를 위해 활용할 수 있다. 그리고 그렇게 벌어들인 돈으로 그 외자부채를 갚아 나가면 된다.

박정희 체제는 자본에 대한 국가적 통제를 통해 생산적 투자와 기술개발, 양질의 일자리 창출을 가능하게 만드는 시스템이었다. 박정희 체제는 외자와 함께 어렵사리 형성한 국내 자본을 생산적 투자에 몰아넣기 위한 총력전을 벌였다. 그리고 국내 자본이 금융 수익성만 좇아 비생산적 부문이나 해외로 빠져나가는 사태를 막기 위해 금융시장과 외환시장을 체계적으로 억압하고 통제했다. 정부 허가 없이 외화를 유출하면 사형까지 당할 수 있던 시대였다. 그리고 이렇듯 '자본에 대한 국가적 통제'의 덕택에, '박정희 체제'란 명칭으로 포괄되는 30년 동안 한국경제는 세계사적으로 유례없는 속도로 성장했으며 이에 따라 일자리가 계속 늘어나고 실질임금이 꾸준히 상승할 수 있었던 것이다.

김영삼 정부의 경제민주화 - 반노동, 친시장 체제와 금융위기

한마디로 박정희 체제는 '반노동-친성장주의' 체제였다. 그런데 1993년 초 출범한 김영삼 정부는 군인출신이 아닌 최초의 문민 대통령 정부답게, '박정희 경제 유산의 해체'를 국정 지표로 제시했다. 그 후 집권한 김대중·노무현 정부 역시 대동소이했다. 그런데 이 '박정희식 경제체제의 해체와 경제민주화'는 과연 '노동친화적'인 개혁이었는가. 그렇지 않았다. 오히려 그것은 '반노동, 친시장'의 경제민주화, 즉 '(신)자유주의적 경제민주화'일 뿐이었다.

먼저 노동 영역에 대해 말하자면, 김영삼 정부와 그에 이은 김대중·노무현 정부는 초지일관 '친시장적' 노동 정책 노선을 고수했다. 즉 이들 세 '민주' 정부는 모두 노동자 개인과 노동조합의 권리를 신장시키는 일에 무관심했으며, 노동시간 단축과 실질임금 증가에도 뚜렷한 업적을 남기지 못했다. 기초생활보장법 같이 (신자유주의의 프레임 안에서도 허용되는) 선별적·잔여적 복지 외에는 별다른 사회복지 구상도 없었다.

오히려 이들 정부는 1990년대 초반까지의 이른바 박정희 체제 하에서는 불법화되어 있던 정리해고와 비정규직 고용까지 합법화했다. 학자들은 이를 '노동시장 유연화'라고 칭한다. 노동시장 유연화는 마가렛 대처의 영국과 레이건의 미국에서 시작된 이래 한국만이 아니라 세계적인 유행이 되었다. 그런데 한국에서는 노동시장 유연화가 마치 '경제민주화'인양 포장되었다.

더구나 김영삼 정부는 자본에 대한 국가적 통제 장치들을 대대적으로 해체하였다. 자본에 대한 국가적 통제·기획의 주무 부서인 '경제기획원'이 1994년 해체된 것은 그 상징적인 사건이다. 이병천 교수가 잘 지적했듯이, 1990년대 초반 이래 한국에서 박정희 체제를 해체하는 데 앞장선 인물(개인)들은 바로 박정희 체제 하에서 권력의 정점에 있던 모피아 관료들과 재벌계 인물들이다. 그런데 그들만 그런 것이 아니었다. 이른바 중도우파로 분류되는 '보수적 자유주의' 학자·지식인들, 그리고 중도좌파로 분류되는 '진보적 자유주의' 학자·지식인들 역시 박정희 체제 즉 '자본에 대한 국가적 통제'의 해체에 함께 나섰다. 특히 진보적 자유주의 그룹의 학자·지식인들은 이와 같은 국가적 자본 통제 체제의 해체에 대하여 '경제민주화'라는 멋진 이름까지 지어주었다.

김영삼 정부 하에서 외환·금융시장에 대한 국가통제가 완화·해체되자 한국의 은행과 종금사 등은 마구 외채를 꾸어왔다. 그 결과 터진 것이 1997년 말의 외환금융위기이다. 따라서 외환금융위기는 모피아 세력과 자유주의 개혁파 지식인들이 말하듯이 '박정희식 관치금융 때문에' 발생한 것이 아니라, 오히려 그것(관치금융)을 섣부르게 해체했기 때문에 발생한 것이다.

▲ 1997년 12월 3일 임창렬 부총리 겸 재정경제원 장관과 미셸 캉드쉬 국제통화기금(IMF) 총재가 서울 세종로 청사에서 긴급 자금 지원을 받기 위한 최종 협상 결과를 발표한 후 악수하고 있다. ⓒ연합뉴스

김대중·노무현 정부의 진보적 자유주의 – 자유로워진 자본

그런데도 IMF 사태의 한가운데서 집권한 김대중 정부는 박정희식 관치경제·관치금융 때문에, 즉 '자본에 대한 국가적 통제' 때문에 위기가 터졌다는 주류 신고전학파 및 신자유주의자들, 그리고 이른바 진보적 경제민주화론자들의 견해를 그대로 수용했다. 따라서 김대중·노무현 정부가 추진한 (진보적 자유주의에 따른) 경제민주화는 '자본에 대한 국가적 통제'를 더욱 해체하는 수순을 밟았다.

그것이 바로 은행민영화(외환은행의 론스타 매각)와 국영기업 민영화(KT와 포스코의 민영화), 주식시장 완전개방(월스트리트 주식자본의 대거 유입), 주주자본주의의 대폭 허용(적대적 M&A 촉진과 소액주주권 보호), 재벌개혁(출자총액제한 강화), 사모펀드·헤지펀드나 미국식 투자은행(골드만삭스와 같은)의 육성 등이다.

한마디로 말해서 진보적 자유주의 개혁파가 말하는 경제민주화란 자본에 대한 국가적 통제 체제의 해체를 의미한다. 중앙은행(한국은행) 독립성 역시 IMF와 세계은행 등에 포진한 주류 경제학자들과 신자유주의 세력이 강조해온 것인데, 우리나라에서는 개혁·진보 세력이 '관치경제·관치금융 해체'의 일환으로 중앙은행 독립을 강력하게 주장하면서 신자유주의자들과 - 설령 본래의 선의는 아니라 하더라도 – 동일한 보조를 맞추고 있다.

김대중·노무현 정부 하에서 추진된, 그리고 이명박 정부 역시 그 기조를 지속하고 있는 자본에 대한 국가적 통제의 해체(즉 관치금융 해체)로 인해 우리나라에서 금융위기가 빈발하고 있다. 이미 2003년에 발생한 신용카드사 위기가 하나의 소규모 금융위기였다. 2년 전부터 큰 문제로 되고 있는 저축은행 부도 사태 역시 일종의 소규모 금융위기이다.

그리고 만약 그리스에 이어 스페인과 이탈리아 경제가 파탄에 직면하여 유럽과 세계의 경제위기가 더욱 심화될 경우, 현재 900조원을 넘어 그 부실화 위험이 날로 격심해지고 있는 은행권 가계대출 역시 또 하나의 대규모 금융위기(은행위기)로 나타날 수 있다. 그리고 이 모든 위기의 배경에는 우리나라 금융시장과 기업지배구조를 월스트리트 모델로 '개혁'해야 한다고 주장해온 '자유주의적 경제민주화론'이 존재한다. 보수적, 진보적 자유주의 모두 그랬다.

복지국가 – 친노동, 친성장적인 국가개입주의 경제

많은 사람들이 우리를 박정희주의자라고 욕한다. 우리를 '국가만능주의자'라고 비난하기도 하고, 우리가 박정희 개발독재의 긍정성(자본에 대한 국가적 통제)에만 주목할 뿐 그 부정성(노동에 대한 국가적 억압)에는 눈을 감았다고 비판하기도 한다.

그러나 우리의 주장은 박정희식 경제 체제에서 부정적 요소들(노동 억압)을 버리되 긍정적인 요소는 살리자는 지극히 상식적인 이야기이다. 한편으로는 노동민주화와 보편적 복지를 핵심으로 하는 복지국가 정책을 펼쳐나가면서, 동시에 다른 한편으로는 자본에 대한 사회적, 민주국가적 통제를 더욱 세련되고 효율적인 방향으로 발전시켜 나가야 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후자에 관한 한, 박정희 체제의 긍정적 유산인 외환금융 통제와 주주자본주의 통제, 적극적인 산업육성 정책 등은 적극 수용해야 한다는 것이다.

경제민주화를 위해 필수적인 '자본에 대한 국가적 통제'의 핵심적 목표는 자본(금융과 산업·기업)으로 하여금 단기 수익성과 투기적 이익을 추구할 것이 아니라 생산적 투자와 기술혁신, 양질의 일자리 창출에 적극적으로 나서도록 하는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자본시장(금융시장)과 산업·기업이라는 두 가지 영역에서 동시에 적극적인 국가개입이 필요하다. 또한 복지국가 재정의 확보를 위하여, 자본(금융자산 및 기업)의 소유자들에 대해 그 소유로부터 발생한 소득에 대해 과세하는 것(누진적 소득세의 부과) 역시 '자본에 대한 사회적·민주적 통제'를 위한 매우 중요한 수단이다.

스웨덴식 복지국가를 지향하는 우리에게 '박정희를 옹호하는 게 진보냐'라고 질타하는 분들이 있다. 그렇지만 박정희 체제를 무슨 '절대악'처럼 규정하는 것은 박정희를 신처럼 숭배하는 것만큼이나 정치적으로 어리석고 윤리적으로는 그릇되다. 그리고 우리는 '진보'로 인정받기 위해, 1960-1970년대의 경제성장이 우리나라 국민의 삶의 질을 획기적으로 향상시켰다는 사실 자체를 부인하거나 이에 대한 박정희 시스템의 일정한 기여를 부인할 생각은 전혀 없다.

우리가 추구하는 것은 보편적 복지국가를 중심에 놓고 노동자 보호와 협동조합 육성, 금융 규제, 산업 정책 등의 수단을 통해 경제가 다방면에서 민주적으로 운영되는 경제체제이다. 그리고 우리가 박정희 체제의 긍정적인 요소를 이야기하는 것은 우리가 추구하는 경제 체제 속에서 금융시장 규제와 산업정책 등이 행하는 중요한 역할들이 있기 때문이다.

'한국경제 성격 논쟁'을 통해서 정태인 새로운 사회를 위한 연구원 원장, 이병천 강원대학교 교수 등의 집중 비판을 받은 <무엇을 선택할 것인가>(부키 펴냄)의 저자 장하준 케임브리지 대학 교수, 정승일 복지국가소사이어티 정책위원, 이종태 <시사IN> 기자가 답변을 보내왔습니다. 이들은 앞으로 약 10회에 걸친 답변에서 새로운 문제 제기도 할 예정입니다.

애초 이 글은
영국에 있는 관계로 한국의 논쟁에 실시간으로 참여하기 어려운 장하준 교수의 제안으로 구상되었습니다. 장 교수가 주도한 수차례에 걸친 장시간의 화상 회의를 통해서 답변의 구체적인 내용이 마련되었고, 각자 나눠 쓴 초고를 역시 수차례의 첨삭을 통해서 조율해 최종 원고를 완성했습니다. <편집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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