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행/2015

양평 유명산-용문산

내일보기 2015. 4. 5. 16:08

100대명산을 진행하는 산악회따라 경기도 양평의 유명산과 용문산을 다녀왔다.

 유명산의 본래 이름은 이곳 일대에서 말을 길렀다 해서 마유산이다. 대동여지도에 마유산으로 나오는 산인데 어이 없게 산 이름이 바뀌었다. 1973년 엠포르산악회가 국토 자오선 종주 등산 중 이 산에 이르러 산 이름이 없자 일행 중 홍일점인 진유명씨의 이름을 따라 유명산이라고 하자고 하여 유명산이라는 이름이 붙혀졌다. 지금은 유명산으로 통칭되고 있다.

(출처는 : https://www.koreasanha.net/san/yumyeong.htm)

 용문산은 경기도에서 화악산(1468m), 명지산(1267m), 국망봉(1168m) 다음으로 높으며, 북쪽의 봉미산, 동쪽의 중원산, 서쪽의 대부산을 바라보고 있는 용문산은 산세가 웅장하다. 남서쪽 능선으로 장군봉, 함왕봉, 백운봉이 이어진다. 용문산은 험난한 바위산으로 정상은 중급자 이상의 산행코스이며 옛 이름은 미지산(彌智山)이다.(출처는 : https://www.koreasanha.net/san/yongmun.htm)

 

9시 30분.

들머리는 경기도 파주와 경남 거창을 잇는 37번 국도 마유산로 농다치고개.

 

산능선을 잘라 길을 낸 관계로 처음부터 급경사 계단으로 되어있다.

 

유명산- 소구니산-중미산으로 이어지는 주능선까지는 급경사로 40여분 올라야 한다.

주능선에 오르면 나오는 갈림길에서 소구니산은 오른쪽으로 진행해야 한다.

갈림길 바로 왼쪽으로 작은 봉에 있는 나무.

 

소구니산까지는 한시간 남짓 .

 

작은 암봉에 올라 본 유명산.

오른쪽으로 보이는 마을은 양평읍내

 

유명산 정상앞 이정표.

소구니산에서 유명산을 향해 가다보면 정상은 왼쪽으로 좀더 가야하고, 활공장과 배너머재로 가는 길은 오른쪽길로 가야한다.

 

유명산 정상에 오르니 멀리 용문산 정상위로 비행기 날아가는 흔적이 보인다.

유명산 정상까지 1시간 20분 정도

 

산림청 선정 100대 명산중 하나

 

활공장

 

활공장에서본 남서쪽 양평 한화리조트가 있고 오른쪽에 소구니산도 보인다.

 

활공장에서 동쪽 용문산 정상과 오른쪽으로 볼록한 백운봉과 오른쪽 양평군 읍내.

 

활공장에서 남동쪽

 

내려오며 뒤돌아본 활공장 모습

 

활공장에서 배너머재까지는 임도로 이어진다.

ATV교육장과 배너미고개산장. 여기서 홀로 막걸리 한병마심.

배너머고개까지는 2시간 10분정도 소요

 

ATV건너편으로 올라가다 나무 두드리는 소리에 귀를 기울이니 딱다구리가 보인다.

 

앞선 사람들이 점심을 먹고 있기에 함께 먹다.

 

쓰러진 나무아래로

 

억새도 있고

 

 

 

 

가섭봉오르다 뒤돌아보다.남서쪽

 

 

 군부대에서 본 동남쪽. 가운데사진에 용문사. 오른쪽 볼록 솟은 백운봉

 

 

가까운 장군봉 다녀오다.

 

장군봉에서본 군부대

 

풀섶이 바스락거리기에 보니 작은 도마뱀이다.

 

앉은부채.

 

CP#5이정표에서 가협치 너덜지대를 지나면 왼쪽 정상과 오른쪽 용문사로 가는 갈림길이 나온다.

용문봉 능선으로 가려면 이곳에서 50m정도 아래에서 왼쪽길로 들어서야 한다.

 

 

용문산 정상까지는 4시간 40분가량.

 

 

가운데사진에 용문사가 보인다.

 

 

 

 

 

장군봉에서 상원사지나 이곳으로 내려올 수도 있다.

 

용문사 뒤쪽에 현호색이 지천이다.

 

이맘때 산에서 많이 보이는 생강나무꽃

 

 

 

대웅전 앞마당 앞 은행나무

다음 백과사전에 의하면

천연기념물 제30호. 높이 42m, 가슴높이의 줄기둘레 14m로 수령은 1,100년으로 추정된다.

가지는 동서로 28.1m, 남북으로 28.4m 정도 퍼져 있다.

나무의 나이를 추정하는 근거는 용문사의 창건연대와 관련하여 산출하고 있다. 용문사는 신라 진덕여왕 3년(649)에 원효대사가 세웠다고 한다. 따라서 은행나무는 절을 세운 다음 중국을 왕래하던 스님이 가져다가 심은 것으로 보고 있다.

신라의 마지막 임금인 경순왕의 아들 마의태자(麻衣太子)가 나라를 잃은 설움을 안고 금강산으로 가다가 심었다는 설과, 의상대사가 짚고 다니던 지팡이를 꽂고 갔는데 그것이 자랐다는 설도 전해지고 있다.

이 나무는 은행나무 중에서는 물론이고 우리나라에서 자라는 나무 중에서도 가장 큰 나무로서 조선 세종 때 당상직첩(堂上職牒) 벼슬이 내려졌다 하며, 마을에서는 굉장히 신령시하여 여러 가지 전설이 전해지고 있다.

옛날 이 나무를 베고자 톱을 대었을 때 톱자리에서 피가 나오고 맑던 하늘이 흐려지면서 천둥이 쳤기 때문에 중지하였다는 이야기와 정미의병이 일어났을 때 일본군이 절을 불살라버렸으나 나무만은 타지 않았다는 이야기와 나라에 큰 이변이 생길 때마다 큰 소리를 낸다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고종이 죽었을 때 커다란 가지 한 개가 부러졌고, 8·15광복, 6·25사변, 4·19, 5·16 때에도 이상한 소리가 났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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